새벽에 눈이 번쩍.
어제도 분명 늦게 잠이 들었는데 정신이 말똥 말똥 해졌다.
오늘은 몇일 전 부터 기다렸던 가을소풍 가는날.
승학산 정상에 있는 억새초원으로 억새구경을 가기로 했다.
처음 가는 산길이라 며칠째 인터넷도 뒤지고 몇명의 블로그를 돌아 다녔는지 모른다.
어제 기상청에서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파란 하늘이 아주 이쁘게 빛나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조그맣게 떠 있는 푸른 가을 하늘.
우선 기분좋게 이불빨래를 해서 널어 놓고
본격적으로 승학산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마지막 점검을 위해 컴퓨터를 켠다.
준비를 철저히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등산로도 인쇄하고, 승학산 주변 지도도 첨부했다.
다시 한 번 코스를 머리속으로 그려보며 즐거운 소풍을 상상했다.
앞으로 닥쳐올 시련은 생각지도 못한채.
한번도 가본적 없는 산이라, 어디서 올라 어디로 가야 할지 많이 걱정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산행기를 찾아 보고 비교적 쉬워보이는 코스로 결정했다.
우린 그저 가. 볍. 게. 떠나는 가을 소풍이니까 :P
우리가 정한 코스는 당리지하철역에서 2-1번 마을 버스를 타고 동원베네스트 아파트 에서 내려 시작하는 산길이었다.
당리쪽은 지리도 잘 모르니, 다음 로드뷰를 이용해 실사로 골목골목까지 확인을 마치고, 김밥천국의 위치까지도 알아뒀다.
뭐, 결국 김밥천국은 먼저 도착한 친구가 찾아서 샀지만 :)
모두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약속시간에 조금 조금 늦어지게 되어 출발이 조금 지연된 것 말고는
특별히 문제 없는 소풍이 시작되었다.
부산대학교지하철에서 출발.
당리지하철 도착.
당리지하철 3번 출구에 2-1번 마을 버스가 정차하였는데 현재 3번 출구는 엘리베이터 공사 관계로, 딱 10월31일 오늘까지
통행금지 상태였으며 1번 출구로 오르니, 그 앞에 2-1번 버스가 문을 활짝 연채 우릴 반겨주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올라탄 우리는 걸었으면 지칠뻔 한 동원베네스트 아파트 까지 올라와서 하차.
아파트 상가에 슈퍼가 없어 다른 간식거리를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
드디어 수많은 등산객들과 함께 가을 자연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린 그저 가볍게, 코 앞에 있을줄 알았던, 그 억새밭을 향해.
<<당리지하철역 ☞ 동원베네스트2차 ☞ 무학사 ☞ 삼나무숲 ☞ 억새초원 ☞ 승학산정상 ☞ 동아대학교 하차>>
처음 부터 산속으로 향하는 길에서 약간의 투덜거림이 시작 되었다.
"산이잖아요~"
그럼, 승학산. 산이지. -_-;; 아하하.
그렇게 힘들지 않을거라는 격려를 하면서도, 나도 처음 가는 산이라 많은 걱정이 되었다.
그런 우려속에 조금 오르니 인터넷에서 보던 삼나무 숲이 나오기 시작했다.
삼나무는 생긴게 쭉쭉 뻣어 올라가 위에 삼각형(?) 모양이 이쁜 나무였는데,
삼나무에서 나오는 어떤 물질이 스트레스도 해소시켜 주고, 유해물질들도 많이 제거 해준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우리의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 지고, 입고 있던 옷은 하나씩 벗겨지고, 어느새 숨은 빨라지고,
생각보다, 사진으로 보던 것 보다, 역시 산은 산이었다.
등산이라고 생각하고 오르면 크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동네 뒷동산 수준보다는 높았기에,
크게 생각없이 오른 우리는 조금 힘이 부치기도 했다.
뭐, 그래도 왔으니 가야지 ? ㅎㅎ
그렇게 삼나무 숲을 한참을 오르니 점점 산 정상에는 나무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억새풀.
저 멀리 보이는 억새밭 속의 사람들의 기다랗게 늘어진 줄.
1만평에 달하는 억새초원이 산능선을 따라 커다랗게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오르는데 약간 힘은 들었지만, 정말 억새초원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장관에 가슴이 탁 트였다.
펼쳐진 초원에는 억새들이 바람에 물결치고 있었다.
억새밭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길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감상하지 못하고,
억새밭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울타리 때문에 억새사이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지만
머리속까지 시원하게 뚤리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정말 오늘 저 곳에서 만큼은 다른 어떤 꽃 보다 아름다운 억새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억새 초원을 지나 승학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들기전에 헬기장이 있었고, 널다랗게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정상에는 나무가 많이 없어 그늘이 찾기 힘들었는데, 우리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땐 구름이 일초 이초가 다르게 생기던 중이라
그늘이 만들어 져서 해를 피해 쉴 수 있었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앞에도 억새, 뒤에도 억새, 양옆에도 억새인 곳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
친구들 끼리 가족끼리 올라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앉아서 쉬다가, 산에 왔으니 정상을 밟기 위해 승학산 정상으로 향했다.
(애초의 계획은 꽃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출발했던 무학사에서 꽃마을과 억새초원이 서로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어 어쩔수 없이 억새초원으로 향했고, 다시 돌아가는 것 보다, 승학산 정상을 통해 동아대로 내려오는 길로 택했다)
점심도 먹었겠다. 이제 등산을 한다는 생각도 몸에 박혔겠다. 조금 힘든 길이었지만 으쌰으쌰 힘내며 내달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곤 하였는데, 우리도 그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겠다고 요리조리 살피며 나아갔다.
그렇게 지나는 길에서 아이스크림은 만나지 못하고 도착한 정상 !
승학산이라는 자그마한 비석이 세워져있었고 496m 라는 글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비석 뒤로 보이는 아이스크림아저씨. 우리는 그곳에서 31가지보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참. 내려다 보이는 을숙도 모습도 이뻤다. 삼각주를 삼각지라 외치면서. 핫
이곳에서 착륙을 하고 있는 대한항O 비행기도 보고 김해공항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닥쳐 올 난관을 모른채 편히 쉬었다.
정상에 올랐으니 비석을 동료 삼아 단체 사진을 한방 박고, 이제 내려가기로 했다.
동아대학교 코스는 예전부터 악명 높은 코스였던것같다.
이번 소풍을 준비하며 검색했을 때, 몇년전에는 밧줄을 붙잡고 올라오던 길이라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너무 가파른 곳은 계단을 세워 등산객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계단이 없는 곳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허벅지에 힘을 꽉 준채, 거의 기다 시피 해서 내리고 또 내리고 또 내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긴장을 하고 내려와서 정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옆에서 쉬고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떡을 주셨다.
우린 냉큼 받아 먹었다.
"감사합니다."
사과를 주셨다.
우린 냉큼 받아 먹었다.
"감사합니다."
과자를 주셨다.
우린 냉큼 받아 먹었다.
"감사합니다."
건너편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계란을 주셨다.
역시 우린 냉큼 받아 먹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까지 냉큼 받아 먹은 우리는 동아대학교를 통해 하산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길이 되어, 편할거라며 데려갔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하루였지만,
그래도 함께 맑은 공기도 쐬고 이쁜 경치도 구경하고,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
기뻤다.
친구들도 몸은 조금 지쳤겠지만, 마음은 가득차는 하루가 되었을거라 생각하며.
2010.10.31
승학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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