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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경주, 옛 아름다움을 찾아서




며칠째 컴퓨터 켜도 날씨, TV만 봐도 날씨, 날씨에 온 관심이 쏠려 있었다.
태풍이 오고 있던 날, 주말의 비소식은 없었다.
태풍이 지나던 날, 주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태풍이 지나간 날, 주말은 비가 예보되고 있었다.
8월 15일 일요일.
그날은 광복절이기도 했고, 누군가의 생일이기도 하였지만(다시한번 생일축하^^), 경주로 나들이를 가기 위해 잡아 뒀던 날이었기에...

8월 12일 비가 오면 어쩔거냐는 이야기...
8월 13일 비가 와도 가자는 이야기...
8월 14일 비가 올 확률이 60% 라는 이야기...

드디어 8월 15일 아침이 밝았는데, 아침 뉴스는 폭우로 물난리가 난 비사고 소식 뿐이었다.
창밖의 하늘은 잔뜩 흐리긴 했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고 서둘러 준비해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하지 않으면 비가 와 버릴것 같다는 생각에... 빨리 나선다고 내릴 비가 그쳐버릴건 아닌데 말이다.





이번 여행의 당초 계획은 불국사와 그 앞에 있는 카트밸리에 가서 카트를 타고, 이번에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을 둘러본 후, 야경이 예쁘다는 경주 안압지의 야경을 구경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사실 이 찌는 듯한 더위에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을 향해 눈을 흘겨주며 점점 더 무거워 지는 몸을 이끌고 이렇게 관람하는게 무리라면 무리였을지 모르겠다. 다녀와서 생각해보건데 파란하늘을 마음껏 구경시켜주는 맑은 날씨보다. 비도 조금 뿌렸었지만 구름 차양막을 씌운 그 하늘이 더 없이 고마운 날이 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행복한건 그때는 모른다면서...


오전 9시 54분 자동차 엔진이 부드럽게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은 내가 직접 차를 몰고 떠나는 첫번째 여행. 사실 그래서 더 기다려 졌고, 취소되기가 싫었을지 모른다. 뭐든 처음이란건 설레는 법이니까. 집근처 살고 있는 친구를 태우고 학교로 향한다. 둘다 커다란 우산과, 커다란 걱정을 앉고 차에 올랐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건 숨길 수 없는 진심이었다.


10시 26분 학교 도착. 조금 늦었다 생각했었는데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함께 가기로 했던 외국인친구는 일찍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런 날에도 코리안타임은 어김없이 ! 30분 가량 기다린 후에 드디어 경주로 출발 !
사람 OK ! 기름 OK ! 날씨 OK !


걱정과 달리 도로에는 차가 심하게 많이 있지는 않았다. 주말이긴 했지만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내리는 곳도 있었고, 비구름이 없는 곳이 없어서 다들 집에서 쉬는 건지 도로는 막힘없이 달려갈 수 있었다. 가끔 빗방울이 흩날리긴 했지만 잠깐 오고 그쳐버리고 누가 위에서 분무기를 뿌리는것마냥 모래알같은 물방울들이 창문에 떨어지는 것 뿐,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차를 달리다가 호두과자 노래를 부르는 녀석이 있어 언양휴게소에 들렀다. 하긴 고속도로 여행을 하며 휴게소를 안들르면 섭섭하지. 모두가 공감했던 그것 ! 호두과자는 휴게소 호두과자가 가장 맛있다 ! 운전하며 뻐근해진 목도 풀어주고 휴게소 관광안내소에서 경주 내 관광지도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 경주 불국사를 향해 즐거운 마음으로 핸들을 잡았다.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그땐 보지 못한채...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차가 막힐 것 같다는 걱정도 없었고, 혹시나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던 걱정도 싹 잊을 만큼 편안한 드라이빙에 (ㅋㅋ) 신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며 경주로 향하고 있었다. 경주IC가 가까워 졌을때 또 다시 빗방울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앞서서도 약간의 빗방울은 조금씩 왔었기에 이것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날은 점점 어두워 지고 앞서 달리던 차들은 비상등을 켜기 시작했다. 서둘러 함께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였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폭우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 와이퍼는 쉴세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앞 유리창은 계속해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어떤 차들은 도로에 고인 물을 양 옆으로 마치 분수쇼라도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쏘아대며 달아났다. 왜 하필 이곳이 이럴까. 부산은 날씨가 괜찮았는데 이제 곧 경주IC 인데, 왜 여기에는 정말 하늘에 이 많은 물들이 어떻게 있나 싶을 정도로 퍼붓는걸까. 부산에 비나오지 왜 하필 경주에 비가 올까. 온갖가지 불만이 머릿속까지 차버린 빗물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조심스런 거북이 운행 끝에 경주IC에 다다라 나갈 때도 빗줄기가 점차 약하긴 했지만, 비가 그치진 않았다. 


▲ 비오는 창밖, 경주IC 요금소 모습



경주 IC를 나가고 있는 중에 함께 갔던 차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라벌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라벌휴게소로 접어 들어 차를 잠시 세웠다. 비가와서 내리는 것도 싫어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빗줄기는 점차 점차 얇아 졌다. 우리가 지나 온 곳은 아직도 지옥으로 들어 가는 곳인것 마냥 검은 그림자가 가득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파란 하늘 까지도 고갤 내밀며 경주에 도착한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경주에 들어온 것이었다. 경주에 도착을 했지만, 갑작스런 폭우를 만나 도착했다는 즐거움을 만끽할 순간을 놓쳐버렸었다. 그 기쁨보다 더 큰 파란하늘을 발견한 희열을 느꼈으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하하하. 주차된 차 앞에 한 차가 서더니 창문을 내렸다. 일행이었다. 웃으며 다시 출발 하지는 신호를 보냈고, 우리도 다시 기쁜 마음으로 출발을 외쳤다. 그렇게 비와는 이만 여기서 안녕.





먼저 첫번째 목적지인 불국사까지 찾아 갔다. 시간은 어느덧 점심식사를 해야 할 때가 된건 같았다. 나는 운전에 정신이 팔려 배가 고픈지 몰랐으나 점심부터 먹자는 연락을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난한 대학생, 점심메뉴는 라면이었다. 얼마전 1박2일의 강호동이 육봉선생으로 등극하며 멋진(?) 장면을 연출해줘서 무심코 흘려본 의견에 덜컥 낙찰되어 코펠이며 버너며 챙겨가야할게 산더미가 되어 귀찮았지만, 어쨌든 비가와서인지 영업을 하지 않는건지 아니면 원래 무료로 개방하는지 모를 주차장에 들어가 차를 세워두고 지붕딸린 벤치로 가서 우리의 시장을 달래줄 라면을 끓이....기에 앞서, 생일인 친구가 있어 깜짝 생일 파티를 했다. 파티 때 쓴 꼬깔모자를 여행내내 쓰고 다녀야 했지만, 그래서 난 조금 떨어져 다녔지만, 어쨌든 진심으로 생일축하하고 :D 크게 놀라지 않는, 깜짝 생일파티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이때만큼은 1박2일에서 처럼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파고드는 햇빛과 뜨거운 라면의 열기에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만드는 시간이었기에... 이것 또한 추억일 것이니...


 ▲ 깜짝 생일 파티, 생일축하해!!



▲ 맛있게 끓여진 라면 !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불국사로 올라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카트밸리에서 체감속도 300km/h에 달하는 카트를 내달리며 스릴을 만끽해야 했지만, 날씨 때문에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곧장 올라간 곳이 불국사!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학생이라면 불국사엔 한번 쯤 왔을법 한데, 난 전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이 가장 유력한데, 그 때 터졌던 IMF, 그 시절 그 때는 수학여행이 없었기에 내겐 수학여행의 기억이 없다. 어찌 됐든 처음 가보는 불국사. 10원짜리에서나 보던 다보탑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힘차게 올랐다. 불국사 주차장에 막 들어가서 이제 올라가려는데 비가 한방울씩 떨어져 우산을 들었지만, 하늘이 그리 심각하지 않아 크게 걱정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르는 길에 함께간 외국인 친구가 생일을 맞이한 친구에게 '김유신' 이라고 한글 굴림체로 또박또박 박혀있는 나무칼을 선물했다. 물론 그 나무칼도 이제 모든 여행에 꼭 차고 있어야 하는 필수 소품 ! 불국사의 입장료는 4000원이나 했다. 워낙 유명한 곳이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 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4000원의 입장료가 비싸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뜬금없는 지출에 마지막에 회비가 약간 오바 되어 추가회비를 내고 나니 불국사 입장료가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 불국사 입구, 차량통제 안전봉을 밟고 넘고 있는 말괄량이(?) 다큰 소녀


흐리고 불안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불국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불국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불국사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보문화재와 보물문화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http://www.bulguksa.or.kr/) >



불국사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 들어가니 발아래 연못으로 커다란 잉어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가꿔진 주변 경관들을 둘러보며 조금 들어가니 정말 웅장함을 자랑하는 자하문이 보였다. 아쉽게 자하문 앞의 계단은 들지 못하게 되어 있어 엽쪽으로 돌아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자하문을 지나면 대웅전이 있었다. 자하문 앞에서 잠시 기와에 글을 쓸까 했는데, 비싼 가격에 바로 패스, (아, 가난한 대학생이여...ㅠ_ㅠ) 우린 점점 습하고 더워지는 날씨를 잠시 잊기 위해 시원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쉬고 본격적으로 불국사 탐방에 나섰다.


▲ 멀리 보이는 자하문의 모습


옆길을 돌아 들어서니 바로 앞에 떡하니 기다리는 건 바로 석가탑과 다보탑이었다. 다보탑 앞에선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 비교해보기도 하였다. 나는 생각보다 큰 탑의 모습에 조금 압도된 기분으로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았다. 다보탑은 국보 제20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는 다보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이라고 한다. ‘과거의 부처님’ 인 다보부처님이 ‘현재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석가탑 옆에 세웠다고 한다. 그 옆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석가탑은 국보 제21호로 지정된 삼국시대의 석탑으로 다보탑과는 달리 당시의 전통적인 석탑양식을 취하고 있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교화를 상징하는 탑이라고 한다. 751년에 세워진 석가탑은 이전에 세워진 감은사지삼층석탑의 형태를 이어받은 우리나라 3층 석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탑의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여덟 개의 연꽃과 회랑은 이 곳이 성역임을 나타낸다. 또한 탑 안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 70 여점의 문화재는 일괄해서 국제 제 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http://www.bulguksa.or.kr/) >


▲ 불국사 대웅전 앞의 다보탑(국보 제20호)의 모습

▲ 석가탑(국보 제21호)의 모습과, 외국인 친구에게 석가탑을 설명(?)해주는 아까 그 소녀


이 두 탑은 대웅전 앞마당에 놓여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기도를 드리는 몇몇 분과, 그 앞에서 안내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대웅전을 지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특히나 비로전 뒤에는 작은 돌탑들이 아주 많이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들이 예쁘게 쌓여 있었다. 나도 그곳에 가족의 건강과 꿈을 이룰수 있게 해달라고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 비로전 뒤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간 작은 돌탑들



비로전을 내려와 걸어가다 종이 있는 것을 보고 전엔 몰랐던 '에밀레종'의 전설을 들으며 조금 더 걸었다. 그렇게 불국사관람을 마무리 하였다. 불국사는 다른 여느 큰 사찰들 보다 더 웅장함과 위엄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불국사가 과거의 문화재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시며 한국 불교의 발전을 계속하고 세계에 한국불교와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우리 문화가 잘 보전되었으면 좋겠다. (내 입장료는 그렇게 쓰이겠지...?)





불국사를 내려와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우리는 계곡으로 가려고 했다. 산내계곡을 가려고 찾았더니 다음에 가려고 했던 양동마을과 거리도 너무 멀고 불국사에서도 멀리 있었다. 경주를 삼각형으로 꼭지점을 이룬다랄까. 산내계곡은 거리상 탈락, 우리는 관광안내소에 전화를 걸어 계곡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셨고, 또 친절하게 "비가 많이와서 위험할 겁니다" 라고 경고를 해주셨다. 그리하여, 날이 더워졌지만, 이런일로 뉴스에 나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계곡을 참기로 하고 양동마을로 출발했다. 양동마을은 보문단지에서 조금 떨어져 포항으로 가는 길에 있어 40분 가량을 달려서 도착하였다. 이번에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양동마을 역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 나는 양동마을을 이번에 처음 듣게 되었지만 이곳은 예전부터 꽤 알려진 곳인 것 같다. 물론 관광객이 많이 찾고 관광지로 개발된 곳은 아니지만... 양동마을은 1984년에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등재가 되었었다고 한다. 양동마을은 500여년 가까이 이어져온 양반마을로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두 가문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전체에는 양반가옥과 초가가 160호 가량 있으며 옛 마을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얼마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뉴스에 나와서 그런지 나처럼 그 뉴스를 접하고 오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과 섞여 도시에 높게 솟은 시멘트 건물이 아닌 우리 전통 곡선의 아름다움을 지닌 초가집과 기와집 사이의 마을로 스며 들어 갔다.



▲ 마을입구에서 보이는 어느 큰 기와집


우리의 눈길을 끈건 마을 앞쪽에 있는 연꽃들이었다. 연꽃들이 이쁘게 우리를 맞이 해주었다. 우리는 무엇에 홀린 듯 연꽃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옆으로는 옥수수가 자라 있기도 하였고, 고추가 빨갛게 변해가고 있기도 했다. 못에는 백로 한마리가 먹이를 발견한듯 조심스레 사냥을 하려 하고 있었으나, 사냥하는 모습은 끝끝내 보지 못했다. 아직 도시에서 물들어 버린 바쁜 마음이 시골농촌마을에서의 여유있는 백로의 시계에 맞춰지지 못해서였나 보다. 비가와서 길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어 운치에 빠져 앞으로 발을 내밀다 진흙탕을 밟기도 하며 지나갔다.



▲ 먹이를 노리고 있는 백로의 날카로운 눈빛!



 
▲ 연잎 위에 고여있는 물, 잠시 전공 생각이 났지만. 넘어가기로 하고...



▲ 마을 앞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연꽃 밭



그렇게 연꽃밭을 지나 우리는 어떤 골목으로 들어섰다. 인터넷에서 미리 보기로는 코스가 5~6개 정도 있었고, 어떤 테마가 다 있을줄 알았는데, 주차장을 빠져나와 별다른 안내소를 보기도 전에 연꽃에 홀려버린 터라 우리에겐 흔한 팜플렛 한장 없이 덩그러니 마을에 놓여버렸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든건지 안내 표지판도 하나 없었고 길에 떨어져 있던 팜플랫을 보았지만 지도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고추냄새와 알수 없는 꽃 향기를 맡으며 마을 속으로 들어가던 것도 잠시 뭔가 산으로 빠지는 작은 길에 햇빛데이트를 즐기라며 친구 두명을 보내버리고 나머지 일행은 골목길이 끝나는 언덕끝에 올랐다. 언덕 끝에 오르니 마을 반대편으로 넓은 논들이 정말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주 먼곳에는 아파트와 현대의 높은 건물들이 조금 보였지만 고개를 살짝 돌려 그곳으로 시야를 피해버리면 정말 한적한 시골마을에 넓게 펼쳐진 푸른 논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었다. 그때, 바람따라 건너편에서 소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이번에 우리는 그 울음 소리를 따라 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길을 잘 못 든 것인데... 나중에 이상한 뒷길로 빠져서 어떤 집들 담벼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기이한 코스로 가게 되었다 -_-; 아무튼 그땐 소를 보려고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더니 송아지와, 조금 자란 송아지, 그리고 소 한마리가 있는 외양간이 있었다. 여느 외양간에서나 나는 냄새가 우리를 반겨 줬고 조금 더 다가가니 송아지와 소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 편안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듯해 보이는 송아지와 소. 묶여 있지도 갇혀 있지도 않았다.


소와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옆에 자라있는 깻잎을 뜯어 냄새를 맡으며 길을 계속 가다 맞은편 언덕에 마치 양동마을의 춘향이가 탓을 법한 그네가 보였다. 그곳으로 가자고 길을 헤처고 내려가는데 이상한 물길 같은 곳으로 이어져 힘들게 헤쳐 나왔다. 그렇게 내려와서 아까 보았던 그네를 찾아 가려 했지만, 우리중에는 춘향이가 없어서 그런지 결국 그네가 있는 쪽으로는 올라서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돌아가기는 아쉬운 마음에 조금 더 마을 깊숙히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때는 표지판도 있었는데, 우리 눈에 계속 밟히는 이름이 하나 '서백당(書百堂)' 이었다. 친절히 한자를 해석해주던 또 아까 그 소녀(?)가 서당일거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측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무첨당(無添堂)' 은 무당일거라는 허무맹랑한 소릴 했다. (여기서 잠깐 !!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성균생원 이번(李蕃)공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종가랍니다 <출처 : 양동마을 홈페이지(http://yangdong.invil.org/)>) 아무튼 화살표를 따라 서백당을 찾아 찾아 갔는데 정말 마을 깊숙한 곳 까지 안내 되었다. 여느 초등학교가 그렇듯 이 마을의 서당역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곳이 땅값이 싸서 그렇다나.... 그렇게 서백당에 안에 들어섰다.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들어간 집이었다. 집안은 공개가 되어 있지 않았고 마당 수돗가에서 세수하며 잠시 쉬었다 갔다. 마당 한켠에는 이쁘게 큰 아주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600년 가량 된 나무라고 했다. 나무의 정보를 찾다가 알게된 정보인데, 음, 아까 그 소녀(?)는 부끄러울지 모르겠지만 ; 서백당은 서당이 아닌것으로 밝혀 졌다. 서백당은 안골 중심의 산중턱에 자리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공이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월성(月城) 손씨(孫氏)의 종가라고 한다.<출처 : 양동마을 홈페이지(http://yangdong.invil.org/)> 어쨌든 그 소녀(?)의 한자 실력은 수준급이었습니다. 오래된 나무 아래 그곳에서 단체로 사진을 한장 찍고 우리는 떨어져 가는 해를 보며 다음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 서백당(書百堂)안 600년 된 나무 아래서


화살표만 따라 들어갔던 서백당은 꽤나 깊숙히 들어간 것이었다. 나오는데 모두가 지쳐 터덜터덜 발걸음이 무거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시 경주의 보문관광단지로 돌아가서 경주의 맛집이라는 멧돌순두부 집이나 관광지도에서 보았던 불고기단지 같은 곳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으나, 양동마을의 운치에 한번 흔들리고, 당장 지쳐서 배가 고파 이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아직 마을 앞에 식당 같은건 찾을 수 없었고, 마을안쪽에서 엿을 파는 가게, 민박집 하나, 그리고 담배 팻말이 붙어 있는 집 하나, 그리고 연잎차, 연밥, 콩국수 등을 파는 가게 하나가 있었는데, 우리는 연밥과 콩국수를 먹으러 그곳에 들어갔다. 참, 그집에는 마굿간이 있고 말이 한마리 있었는데, 나중에 승마를 하는 듯한 학생 한명이 찾아와 승마복도 옆에서 구경을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릴 잡고 앉아 주문을 하려는데 하필 또 연밥은 동이나서 메뉴를 콩국수로 통일하기로 했다. 그렇게 주문한지 30분 콩을 밭에가서 가져오니, 멧돌로 갈고 있니, 온갖 추측 끝에 나온 콩국수는 맛이 아주 고소하고 좋았다. 그 맛은 단지 배가 고파 맛있는 그런 맛이 아니라 정말 직접 정성껏 키운 콩으로 정성껏 갈아서 정성껏 만들어 주신 주인아주머니의 정성이 들어가서 맛있는 그런 맛이었다.


▲ 정말 고소하고 시원했던 콩국수. \ 5,000 . 초가집이지만 카드도 될겁니다 :D


저녁을 먹고 나온 우리는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마을길을 걷다가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양동마을을 뒷머리에 두기로 했다. 그리고 돌아온 주차장. 커다란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우리 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다른 차마저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제 노을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마지막 목적지인 안압지로 발길을 돌렸다. 안녕.


 
▲ 양동마을 어딘가 초가집 한채



안압지에 도착했을 땐 딱 좋게 어둠이 깔렸다. 정말 이번 여행은 시간도, 날씨도 너무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순간순간이 되는 것 같다. 요즘 내 촉이 좋다 싶더니...으흠. 도착하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더니 안압지는 최고조에 달했다. 길가에도 수많은 차들이 주차가 되어 있더니 주차장은 가관이었다. 그렇게 돌고 돌다 겨우 주차를 하고 우리나라의 옛 건축물과 아름다운 빛의 조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던 것으로, 그 안에는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과 정원이 있었던 곳이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든 즉, 인공적으로 생산된 곳이다. 임해전은 931년 경순왕(敬順王)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군신들의 연회나 귀빈 접대 장소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guide.gyeongju.go.kr/)> 지금은 건물이 3개만 복원 되어 있었는데, 그 건물과 못이 정말 잘 어우러져 옛 귀빈들이 잔치를 베풀며 놀았을 법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은 아름다운 색색의 조명들을 이용하여 야경을 아름답게 만들어 두었는데 못에 비치는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해 주었다. 특히나 도심속의 건물들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아닌 우리식 전통건물에 조명이 비춰지고 달빛이 내려오는 모습은 아주 인상 깊었다.



▲ 안압지 야경, 못에 비친 모습과 함께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해 준다.



 
▲ 안압지 야경모습. 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이 안압지 야경과 어우러져 하늘에 떠 있다.



안압지 야경을 보고 나와 옆에 있는 연꽃밭으로 향했다. 낮에 양동마을에서 연꽃밭을 봐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아름다운 조명의 축제를 보고난 후라 그런지 백색등 아래의 연꽃밭이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한바퀴를 돌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떠나온 여행이었기에 조금더 즐거웠으며 조금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발길을 부산으로 돌리기 직전, 경주의 명물이라는 '황남빵' 을 사러 유명한 집에 들렀다. 역시 이곳도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간다는 곳에는 다 갔나 보다. 그렇게 우리들이 말하던 건전한 여행은 끝을 맺고 부산으로 무사히 내려 올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아침에 폭우를 만났던 경주IC 근처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비를 맞고 우리는 어두운 도로를 달리며 귀신이야기와 함께 오싹한 여름밤을 시원하게 달려 내려왔다. 양산과 부산 사이 고속도로에 차가 앞, 뒤로 한대도 없던 기억... 그 상황은 아직도 미스테리야... 으으~ ㅠ_ㅠ







여행을 마치며...
말하자면 변명 같지만, 생활에 쫓겨 정말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가게 되었다. 출발전에 조금더 신경쓰고 조금더 챙기면 더 알차게 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기에, 그렇게 하지 못해 함께간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준비한 친구에게 감사할 뿐이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도 상당히 중요 한 것 같다.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한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서 인생의 어떤 하루보다 소중했던 하루. 그 기억을 놓치기 싫어 이렇게 흔적을 남겨 놓는다.



- 2010. 08. 15 경주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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